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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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간분쇄기 조회 1회 작성일 2021-11-24 19:34: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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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만에 알아보는 로마제국

10분만에 알아보는 로마제국

학생들도 쉽게 볼 수 있게끔 만들어봤는데

공부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

즐거운 감상하세요

이미지 및 영상 출처 :
Kevin MacLeod의 Last Kiss Goodnight에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 표시 4.0 라이선스가 적용됩니다.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4.0/
아티스트: http://incompetech.com/
영화 300 (2006), 300 rise of an empire (2014)
롬 (Rome) (2005) , 정복자 카이사르 (1964)
Pexels, Pixabay
History.com
Timeline for the Crusades and Christian Holy War to c.1350: United States Naval Academy.
The Crusades: A Complete History: History Today.
The Crusades: LordsAndLadies.org.
Crusades: New Advent.
유포산의쪼꼬도둑뽀구미 : 역사는 시험만 안보면 참 재밌어
무감 : 학생신분을 벗어나니까 이런게 왜 이렇게 재밌을까 ㅋㅋㅋㅋㅋ
영화 한편보는거 보다 이런거 몇 편 찾아보는게 시간도 절약되고 좋은거 같은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ㅋㅋ
찬준은 : 정말 쉽고 깔끔하게, 그리고 제대로 정리를 하셨네요. 굿굿굿 !!
하지훈 : 진짜 군더더기 없이 너무 깔끔하다.... 항상 잘 보고 있어요!!
박이레 : 영상 요약도 개잘하고 설명도 개잘하고 내 역사를 책임질 유튜브...

로마 이야기 #1 전설의 시작

로마 역사 시리즈물의 시작입니다. 꾸준히 올릴 예정이니 재밌게 보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Noah Brian : 로물루스 와 7개 언덕이야기가 좀더 나왔으면 좋았겠네요. 정복전쟁으로 도시국가 지배계층을 하나하나 데리고 와서 언덕 하나씩 준건데... 그게 가문의생성 배경이기도 하고 클라이언트 문화의 기본이기도 하고...
HAPPY YU : 대단하시네요
로마인이야기1편 정리쫙해주시고
강대봉 : 영상 강의 잘 들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

조금 아쉽다면 그 신화가 탄생한 배경 ㅡ특히 시대적, 정치적 배경 ㅡ등이나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엔 '호메로스의 서사시' 뿐아니라 '그리스ㆍ로마 신화 자체가 중세 시대에 성경이 갖던 그 이상의 권위를 가진 종교권력'이었다"는데, 이러한 부분도 터치해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요즘 인문학 열풍에 마치 논어가 처세술인 것처럼 오도되고 있는 세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ㆍ로마신화가 '역사적 사실'과 혼동되는 모습도 많은 영상들에서 보았었는데요^^

저도 요즘 그리스.로마 신화에 관심이 있어 많은 영상을 접했는데, 어느 분이 "일리아드나 그리스ㆍ로마신화가 기독교가 국교가 되기 전 당시엔 '중세 시대 기독교의 성경' 같은 위치"였단 해설을 처음 들었고, 그 말씀은 평소의 제 추론과도 일치해 깜짝 놀랐었습니다^^

신화 학자들은, "신화란 고대 양치기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이야기를 지어낸 데서 유래한 후 차츰 음유시인들이 노래로 부르고 돌아다니다가 차차 글로 기록된 것"으로 본다지만, 고대 그리스 신화와 그 신화가 나온 시대 배경을 면밀히 고찰해 본 결과 저는 대부분의 신화가 당대에 '정치적 목적 내지 정치적 고려'에서 '창작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는 고대 '신관(제사장) 계급들의 내부 권력 투쟁 과정'이 화석처럼 남겨져 있기도 히구요ㆍ

우리는 '용비어천가'의 "육룡이 나르샤~"를 조선건국의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창작한 '신화?'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과연 조선시대 사대부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도 그리 '지어낸 이야기'로 알았을까요? 그 용비어천가를 지은 사람들도, 그 내용들을 수집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은 있겠지만 왕조를 창건하는 집안엔 이런 신비하고 신묘한 기적들이 있었을 것이라"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 부활'을 믿는 것 만큼)믿지 않았을까요? ^^
요즘 일부 신화 학자들은 예수의 '부활' 신화는 그리스 신화 중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인간으로서 죽임을 당한 후 제우스의 특별 배려로 "부활하여 신이 된" 신화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거든요ㆍ

특히 '오이디푸스왕 신화'는 고대 페르시아전쟁이 끝난 뒤 배신자가 된 '테베왕'을 왕따시키고,, 언제든 아테네의 위협세력이 될 테베를 견제하기 위해 아테네 내부 결집을 위해 "테베에 대한 적개심과 아테네 시민들에게 애국심 고취 목적으로 '소포클레스가 머리속에서 창작'한 신화"라고 합니다ㆍ
그리스 시대 최고 극작가였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시학'에서 "비극의 전형"이라 극찬한 소포클레스의 대표작으로 꼽는 3대 비극을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왕',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라는데, 다들 "오이디푸스왕 일가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라지만,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한ㆍ일관계'를 다룬 영화는 대개 천만관객을 달성하듯이 당시 희랍 아테네에선 지금 동아시아에 비유하면 중국에 해당할 스파르타를 겨냥하는 것보단 일본에 해당할 '테베'를 비난하는 모양새의 작품이 인기짱이었지 않았겠나 싶습니다ㆍ

고대 그리스엔 아고라 광장에서 공연하는 연극만이 최고 오락이자 동시에 '최고언론권력'이었기에 어떤 작품을 무대에 올리느냐는 건 작가의 돈벌이 수단과 영달을 넘어 당시 도시국가의 존망과도 연결되던 시대였으니까요ㆍ

'신화의 힘'이란 저서에서 비교신화 학자 캠벨은 "비틀즈ㆍ스타워즈ㆍ예0"도 대표적인 신화만들기의 사례로 꼽거든요^^

사실 신화로 역사 만들기의 결정판은 고대 로마시대 최고 작가인 베르길리우스의 작품 '아이네아스' 입니다ㆍ 단테도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아 지옥부터 여행하는데요 ~~~

베르길리우스는, 고대 로마 옥타비아누스 시대 때 사람으로, 옥타비아누스의 명을 받고서 '로마판 용비어천가'라 할 '아이네아스'를 썼습니다ㆍ
저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학창시절에 읽은 기억만 있어 상세한 내용은 다 알지 못 하지만, 일리아드 전문가인 강대진 교수님이 재단법인 플라톤아카데미에서 한 강의를 다시 보면서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아이네아스를 확인했는데, 강교수님은 "트로이가 멸망하고서 아이네아스는 자결한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아스 가족들이 '아프로디테 여신의 명으로 트로이 성을 탈출하여 이탈리아 땅(로마)로 이주해 나라를 세운다"는 신화로 바꾸었습니다^^

아이네아스 가족이 토로이성을 탈출할 때 '잃어버렸던 아들'이 나중에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대왕의 조상'이란 학설도 있다더군요^^

카이사르ㅡ시저ㅡ가 암살당한 후 집권한 옥타비아누스는, 베르길리우스를 불러 일리아드ㆍ오딧세이 같은 서사시를 짓도록 명했답니다ㆍ세종의 명으로 정인지 등이 용비어천가를 짓는 경위와 비슷한 셈이죠^^

천재시인이던 베르길리우스(약칭, 베선생)는, 당시 누구나 알고 있던 로물루스 형제 이야기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ㆍ 그랬다면, 천재가 아니엇겠죠?^^
베선생은, '일리아드'에서 자살한 아이네아스(터키 프리기아 땅의 왕자)를 "실은 호머로스가 착각했다"면서 트로이성(지금의 터키 땅)이 함락될때 자살한 게 아니라 가족들과 탈출하여, 오딧세이 같은 고난을 거쳐 도중에 카르타고 디도 여왕이 결혼하여 같이 살자고 울고불고 했지만 신의 뜻에 따라 뿌리치고 이탈리아 남부에 정착하여 나라를 세웠는데 여차저차 하여 로물로스 형제를 낳았고 여차저차 후손들이 퍼져나가 카이사르ㅡ시저ㅡ를 낳았고, 그 조카인 옥타비아누스로 혈통이 이어져 내려왔다고 '황금가문 족보'로 둔갑시켰던 것입니다(이를 근거로,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는 사후 신으로 추존되었거든요) ^^

이건, '로마판 동북공정 역사왜곡 결정판'이었지만, 서사시 형태라서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ㆍ 국정교과서로 썼다면, 문제가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죠?^^

베선생의 '아이네아스' 서사시 한 편이,
1ㆍ당대에 옥타비아누스를 황제급인 아우구스투스로 추대할 명분이 되었고,
2ㆍ동시에 당시 로마는 기원전 146년 그리스를 식민지화하여 지배한 것에 대해 지배 명분을 세웠고,
3ㆍ카르타고를 정벌했던 과거를 합리화시킬 명분을 세웠고,
4ㆍ계속하여 과거 페르시아 지역을 '고토회복'이란 명분으로 정벌할 수 있는 명분을 미리 확보해 두는 역사적ㆍ정치적ㆍ외교적ㆍ군사적 목적의 장치가 되었거든요ㆍ알렉산더가 '아킬레스의 후예'라 주장하면서 페르시아 정벌에 나선 사실도 끌어들였거든요^^

고대 로마가 그처럼 세계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밑그림' 내지 비젼을 제시한 '아이네아스 신화'를 서사시 형태로 지어내서인지 모르지만 오늘날 시각으로도 '역사왜곡'으로 폄훼하는 사람도 없으니 ~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신화'가 역사와 시대를 바꾸는 패러다임이 될 수 있단 걸 교훈삼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페르시아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었지만, 로마 제국에겐 페르시아 지역이 전부 정복되지 않은 건 혹 로마와 페르시아가 '같은 아이네아스 혈통'이어서였지 않을까요?
마치 고구려ㅡ백제 같은~?

이런 부분도 추후 다뤄 주시면 더욱 감사드리겠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만드는 놀이와와튜브 : 책읽고 영상보니 더 이해가 잘 되요~ 영상 감사합니다^^
Mun제네시스 : 도움 많이됐어요 감사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1)~(4)편까지 #추천도서 #중간광고없음 #오디오북

** 본 [ 로마제국 쇠망사 ] 리뷰 방송은 책의 기본 컨셉을 바탕으로 간략 리뷰 및 역사적 사실, 사회적 사건 등 기타 내용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만든 방송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꼭 책을 구입해서 읽어보시고 그 정수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필독을 강추드립니다.

윤꾼의 bookking booking

중간광고없음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1)~(4)편까지 한번에 듣기

에드워드 기번 (Edward Gibbon) 저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1737년에 영국 서리 주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탓에 웨스트민스터 공립학교를 중퇴했고, 열다섯 살이던 1752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14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스위스 로잔에 머물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마스터했고, 이 시기에 볼테르의 클럽에 드나들며 계몽사상을 흡수했다. 1757년, 스무 살의 기번은 로잔에서 쉬잔 퀴르쇼를 만나 결혼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이 시기에 사귄 스위스인 조르주 데베르당은 기번의 평생 친구가 되었다. 기번은 1764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했 는데, 로마에 입성하여 카피톨륨의 폐허를 본 순간 《로마제국 쇠망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자서전에 적고 있다. 1776년 2월에 출간된 《쇠망사》 제1권은 빅 히트를 쳤다. 1781년 3월에 《쇠망사》 제2권과 제3권이 나왔고, 이어 1788년 5월에 제4~6권이 출간되었다. 말년에 지병인 음낭 수종으로 고생하다가 1794년에 타계했다.
(출처: 인터파크 )
돈키호태 : 정말 유익한 책들을 현대인들의 필수도서로 반드시 읽어야되는데도
바쁘다는 핑게로 보지못하다 이렇게 유투브방송으로 소개해주시니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yong hee lee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늘 즐겁게 강의 듣고 있습니다...
이랑IRANG : 매번 좋은책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잘듣겠습니다 !
Helen : 책읽기 쉽지않은데 해설까지—-너무감사합니다
이승택 : 하.. 화면 끈 상태에서도 듣기위해 프리미엄 가입해버렸습니다.. ㅎㅎ 너무 재밌게 잘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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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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